김 희 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Y선배의 세 번째 주법인 친구불문 사례이다 .처음 가입한 동아리 회원도 술좌석에서 출발하며, 거래처나 고객사도 술좌석에서 만나게 된다. 사장님 부장님도 회식 자리에서 만나고 신입사원 환영회가 열리는 곳도 술좌석이 아니면 어색하다. 자칫 관계가 악화되는 수도 있지만 서먹하던 친구도 술잔을 앞에 두면 자연스럽다.

이것은 또 보다 넓은 의미도 있다. 술은 친소를 넘어 한 번도 뵌 적 없는 조상님을 만나게도 한다. 시제상 앞에 무릎 꿇고 유세차 축문을 읽음으로서 조상님을 대하게 되는데 자손들은 이때 생전에 전혀 술을 못 드신 조상님께도 불문곡직하고 술잔을 바치며 다짜고짜로 복 받게 해달라고 빈다. 그렇게 ‘한잔 술’을 따라 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할 도리를 다 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 1년을 살게 된다.

제사 때 술 한 잔 부어 놓지 못하고 마음이 무거웠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니 조상에 대한 죄 사함 역시 술인 성싶다. 이북에서 온 실향민들의 눈물겨운 소원도 바로 ‘산소에 술 한 잔’인데 휴전선에 막혀 고향 선산에 가보지 못하고 망배단에 사과 몇 알과 소주 잔 놓고 눈물로 절하는 장면을 보았지 않는가.

앞에서 남은 이야기-평양으로 부임하는 도중 황진이 무덤에 술 한 잔 권하던 440년 전 조선의 선비는 ‘사대부가 할 짓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파직을 당한다. ‘천한 기생’한테 술을 권했다는 것이다. 호방하고 기개 넘치던 그는 즉각 낙향하여 천하를 주유하게 되는데 후일 임종을 맞을 때도 ‘곡을 하지 말거라. 외롭게 묻어라’ 했다고 하니 이런 ‘친구불문’은 술이 죄인지 젊은 선비의 ‘호방 기개’가 죄인지 아니면 절세 미인 황진이가 죄인인지 모를 일이다. 분명히 아는 것은 ‘술’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원근, 친소, 고금, 이세상저세상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경계를 뛰어넘어 술잔을 놓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죄 사함’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싶다.

주객 Y가 일러준 네 번째는 실수불문인데 설명 생략한다. 이상의 주법 일체를 체득한 후라야 비로소 술깨나 마시는 반열에 설 수 있다는 것이 Y의 지론인데 유사 주법 종류가 난무하는 지금 이 버전이 독자께 작은 미소 줄지 의문이다.

그로 몇 년 후 그는 주법에 대해서 수정 발언을 한다. 주법은 사실 5도인데 마지막이 생사불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겨울,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신문사를 운영했고 카메라 하나로 산, 바다 떠돌기를 좋아하던 사람, 소리꾼 ‘아니리’와 ‘발림’이 초보 수준을 넘은 사람, 그런 자세로 세상의 멋을 찾던 자유로운 손님 Y는 숨을 거둔다. 가는 날도 그는 여전히 영정 속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그를 포함한 주변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친구불문하고 청탁불문하면서 꺼이꺼이 눈시울 붉히며 자정이 넘도록 통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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