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나의 지인인 저시력인은 시각장애 1등급으로 장애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한쪽 눈이 조금 보여, 어느 정도 사물을 구분하고 보행이 가능하며, 책도 돋보기를 활용해 확대해서 볼 수 있다.

가끔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부페 식당에 갔어요. 맛있는 요리가 아주 많았는데, 같이 음식을 먹다가, 아내는 저에게 ‘갈비 좀 더 가져다 줘!. 샐러드도 좀 담아오고......’하면서 심부름을 시켰어요. 저는 여러 요리를 보면서 갈비를 찾고 샐러드를 찾아서 아내에게 가져다주었어요. 어찌나 흐믓 한 지∼! 하하∼ 제가 이 정도라도 보이니까 아내를 마님처럼 앉아서 맛있게 먹게 하고 제가 요리를 가져다 줄 수가 있잖아요, 하하하 너무 좋아요.” 하며 즐거워했다. “아내 심부름 해 주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럼요, 제가 안 보이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이만큼 보여서 할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좋아요” 라고 말한다. 가끔 이 분은 길을 걷다가도 “저 글씨 보이세요? 저는 간판의 제일 큰 글씨도 안보여요, 근데 이 돋보기(단안경)로 보면 멀리 있는 것도 읽어져요”라며 목걸이처럼 달고 다니는 돋보기를 꺼내어 글씨를 읽으면서 신이 난다.

‘나는 이렇게 잘 보이는 두 눈을 가지고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비문증’이 있어 피곤할 때 조금 더 불편해지면 짜증이 앞섰는데...’ 반성을 하게 된다. 시각장애인들이 두 눈이 안보여도 씩씩하게 출·퇴근을 하고,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해서 수업준비를 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며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정에서도 설거지를 돕고, 청소하고, 빨래도 정리하면서 가사를 도울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도 열심이어서 자녀의 학습을 돕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마다 성실한 가장의 표본을 본다.

중도(中度)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건강할 때 장애인에 대해서 내 분야에서 도울 수 있었던 연구나 지원 등에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고, 본인이 장애인이 되다보니, ‘마음이 아프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장애를 가진 ‘나’와 장애를 가지지 않았던 과거의 ‘나’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장애로 인한 한계가 많기 때문에 느끼는 회한이 깊다.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인이나, 일반인이나 시력의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그릇대로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광수생각의 「모두가 이유 있는 삶」의 그림에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라는 글의 시작으로 다섯 손가락이 모여 자신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다. “엄지손가락 왈, 으뜸의 상징. 당연히 내가 최고지!!, 검지 왈, 무슨 소리, 내가 없으면 코를 시원히 팔수 있겠어? 중지 왈, 무슨 소리, 제일 긴 내가 최고지!!, 약지 손가락 왈, 무슨 소리, 내가 없으면 결혼반지도 낄 수 없다고!! 네 개의 손가락이 함께 묻는다. 새끼 손가락! 넌 내 세울게 뭐 있냐? 니들 나 없으면 다섯 손가락이라고 누가 하겠니?”

이 글을 쓴 만화가 박광수씨와 특수교육을 위한 교과서 집필을 하면서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교과서에 실리는 모든 글과 그림, 자료 등은 작지만 저작료를 지불하여 사용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사용 목적을 밝힌 후, 문의를 했더니 ‘무료’로 사용하라고 흔쾌히 승낙 해 주셨다. 어쩌다 업무상 높은 지위에 있는 분과 통화가 필요할 때, 비서실에서부터 불친절과 거부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으로 온화하게 장애인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이고 글을 써 주신다거나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본인은 아직 건강하다고 장애인을 완전 다르게 보는 것은 ‘리더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땅의 모든 자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비록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의 기쁨을 아는 자는 삶의 특권을 누리는 자이다. 저시력인의 감사는 우리의 삶에 매우 깊은 의미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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